좋은 시조

박해성/정읍시 안단테로

이보영(현숙) 2017. 5. 5. 00:54

정읍사, 안단테로

 

                   박 해 성

 

 

그대, 달빛 입고 아직 거기 서 계신가

욱신욱신 몸살기에 헛것인지 뜬것인지

강 건너 휘파람소리 달뜬 귓불 간질이면

 

휴대폰에 저장해둔 한 사람 지우려다

즌 데를* 헛짚는다, 찌르르 저린 손끝

끊어진 형광등인 듯 속내 정녕 먹먹하고

 

자정 넘어 어둠은 잘 익은 포도주 같아

취기 사뭇 농밀하다, 어긔야 어강됴리,**

눈처럼 겹쌓인 적막 녹을 낌새 영 없는데

 

지상의 젖은 화답 그대로 새가 되어

먼 길 훨훨 날아간다, 아으 다롱디리**

낭자한 그 날갯짓에 꽃잎 하 흩날리겠다

 

*《井邑詞》원문 중 부분 차용.

** 《井邑詞》 후렴구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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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시인이 말했다. “詩도 그 시대의 문화를 즐기는 하나의 매체입니다”라고.

  동감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말씀 “이 첨단 시대에 살면서 아직도 화랑, 신라의 달밤, 정읍사의 노래, 달구지, 신작로, 물레방아, 수틀, 바느질, 낮달, 이승, 저승 등등 그 옛날 시절의 풍경과 풍물, 남들이 지겨울 정도로 써먹는 낡은 시어를 들먹이는 경우를 자주 봅니다.”

  그의 말은 사실이다. 보태자면 고향이나 부모님도 그러하다고,

 

  아직도 시조는 권위주의, 귀족주의, 전통주의 그늘에서 과거지향적 양태를 보이고 있다는 질책을 자주 듣는다. 이 또한 어느 정도는 수긍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여기서 잠깐!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우리의 옛것들이 이젠 시의 재료로써 유효하지 않다는 말씀 아니신가? 하여 나는 생각에 잠긴다.

 

  세월이 변하면 인간의 본질도 변하는가? 무작정 옛것을 버린다고 현대적이 되는가? 고어, 사어, 상투어를 배제했다고, 외래어를 사용한다고 다 좋은 시가 되는가? 과거를 지운 현재가 존재하는가? 삶의 역사가 없는 문학이 살아남을 수 있는가? 등등 쓸데없는 의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밤,

 

  불구하고 나는 천성이 청개구리과라 - 21세기의 이별을 백제의 사투리로 노래하면 어떨까, 궁리한다. “죽도록 보고 싶다”는 날것의 신식 직설보다는 사무치는 그리움을 참다 참다 신음처럼 토하는 “아으 다롱디리” - 어쩌면 주술 같은, 혹은 역설도 같은 이 외마디의 울림이라니!

 

  사랑하는 사람을 애타게 그리며 백제의 여인이 비손하던 달, 바로 그 달을 바라보며 “어긔야 어강됴리” 오늘밤은 내가 취하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