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2 국제신문 신춘문예] 시조 당선작
어머니, MRI
이규원
미궁 속 당신의 뇌를 나는 전혀 모른다
아는 것은 낮은 코 주름진 눈 옅은 눈썹
쭈글한 얼굴이지만 팽팽했던 연륜 너머
도대체 뇌 속에 뭐가 몰래 스민걸까
보이고 싶지 않을 폐쇄성을 비춰보며
경색된 초미세 혈관 병변까지 들춰낸다
치명적인 과거는 소음 속에 분진 되고
멎을 듯한 들숨과 날숨 근육마저 경직되어
사십 분 그 시간 속이 이어질 듯 떨고있다
시상면矢狀面의 용종과 심란한 비린내
우지 마라 괘안타 살 만큼 살았으니
망望 구십, 턱 막혀버린 깊고 깊은 우물이다
● [2022 국제신문 신춘문예] 시조 심사평 / 이승은, 전연희 시조시인
삶의 비의 환기하는 힘과 진정성에 감동
심사하는 내내 상반된 긴장감에 휩싸이게 된다. 참신한 발상, 탄력 있는 구성 등을 살피는 매의 날카로운 눈과 작품 속 진실을 찾는 따뜻한 가슴이 팽팽하게 맞선다.
430여 편의 응모작들은 대다수 우선 시조다운 형식과 운율을 제대로 갖추고 있어 전반적으로는 좋은 작품으로의 면모를 갖춘 듯이 보였다. 그러나 어딘지 기성시인의 작품에서 본 듯한 타성적인 작품, 이미 많이 다룬 내용, 개성이 없는 작품은 실망감과 함께 선외로 내려놓았다.
꼼꼼히 정독하여 골라낸 20여 편을 다시 10편으로, 3차에서 ‘불야성’ ‘옷수선집, 누리’ ‘꽁치구이’ ‘다시, 동백꽃’ ‘어머니, MRI’다섯 편으로 엄선하였다.
‘불야성’은 밤 도시의 화려함에 숨겨진 사람살이의 이중성을 팽팽한 긴장감으로 그려내고 있다. ‘옷수선집, 누리’는 수선하듯 언어를 다듬어 꿰맨 솜씨가 유려하다. ‘꽁치구이’는 유머러스한 여유와 서정의 곡선이 잘 드러났다. ‘다시, 동백꽃’은 도입부의 흡인력과 전체적인 세련미가 돋보였다.
이규원의 ‘어머니, MRI’는 절제된 감정, 관념어 없는 구체적 정황과 묘사로 자칫 빠지기 쉬운 ‘어머니’란 매너리즘을 훌쩍 뛰어넘는 우수한 작품이다. 삶의 비의를 환기해 내는 힘과 진정성으로 읽는 이에게 감동을 전한다. 또 다른 그의 작품 ‘은유의 방식’은 화자와 대상을 묵직한 붓으로 굵게 그리는가하면 그 간격을 세밀한 필치로 한 폭의 그림을 완성하고 있어 그의 작품에 믿음이 갔다.
이규원의 ‘어머니, MRI’를 당선작으로 선정하는데 이의가 없었다. 이후 시조단의 활기찬 변화를 예감한다. 형식을 잘 지키지만 갇히지 않고, 음악성을 잃지 않는 시조다운 시조, 자신만의 개성이 담긴 시조가 새해엔 풍성하게 열리리라 기대한다.
애석하게 당선이 유보된 분들에겐 계속 정진하시라 응원하며 당선자에겐 뜨거운 환호와 박수를 보낸다.
(이승은, 전연희 시조시인)
● [2022 국제신문 신춘문예] 시조 당선 소감 / 이규원
아프고 힘든 이들 위해 좋은 작품 쓸게요
고향은 참으로 많은 사연을 안고서도 묵묵히 견딥니다. 눈물도 웃음도 고스란히 녹여내면서 의연하게 보내주고 맞이하기를 반복합니다. 평생 흙만 사랑하다 흙으로 돌아가신 형부의 영정에 합장하던 중 고향 진부에서 당선 전화를 받았습니다. 서정을 처음 잉태한 곳에서 출산의 소식까지 듣다니… 또다시, 고향은 제 눈가에 눈물이 채 마르기도 전에 커다란 기쁨을 선물하였습니다.
부모님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았습니다. 내 일정하고는 상관없이 병원을 가셔야 했던 어머니가 때론 버겁기도 하였는데, 부모님은 내 모든 생활을 기쁨으로 승화시켜주는 지지자라는 것에 새삼 목이 메었습니다.
제 시조 공부의 지침서가 되었던 ‘우리 시대 현대시조 100인선’ ‘현대시조 창작 강의’ 그리고 ‘시클’ 로 힘든 습작의 시간을 보내다가 경기대 한류대학원에서 시조창작을 공부한 것이 많은 힘이 되었습니다. 대학원 학우들, 시와 길 시우님들과 이 기쁨을 함께하고 싶습니다.
곁에서 묵묵히 지켜보며 언제나 내 편인 짝꿍과 민선, 성진, 재선이 사랑합니다.
75년여의 공명정대한 언론으로 정평이 나 있는 국제신문사에 당선되어 더 없이 영광입니다. 부족한 작품을 당선작으로 올려 주신 심사위원님들께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아프고 힘든 사람들을 위해 긴장과 절제의 정형 시조 작품으로 열심히 보답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약력=1955년 강원도 평창군 진부 출생. 경기대 국어국문학과 졸업. 경기대 한류대학원 시조창작 전공 석사. 2020년 가람백일장 장원. 시와길 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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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일보 2022 신춘문예] 시조 당선작
허블 등대
박샘
날리는 모래들이 눈에 자꾸 끼어든다
빠지고 싶어 했던 깊이가 있었다고
열리면 바로 닫히는 문을 열고 또 연다
떴다가 감았다가 점멸하는 등대처럼
별이 든 눈에서는 깜박이면 반짝여서
출처를 밝힐 필요가 모래에겐 없었다
들 만한 깊이라면 찾기가 쉽지 않아
운석을 지나왔고 사막을 건넜으나
빠지면 나오지 않아 없다고도 할 수 있다
껐다가 다시 켜진 반복은 언제 쉬나
왔다 간 잠이 또 온 불면의 행성에서
모래는 침몰을 향해 국경선을 넘는다
● [2022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조부문 심사평 / 정수자 시조시인
발견에 입히는 사유와 이미지 조합이 정교
신춘의 설렘이 무색한 시절이다. 응모작들에서도 일상이 된 마스크 속의 고통과 고독이 많이 짚인다. 홀로, 따로, 안으로 침잠하며 감염병 시대를 건너가는 각자 도생의 초상이다. 그런 중에도 시조를 찾고 자신의 문법으로 벼려내려는 젊은 응모작들이 늘고 있어 격려와 위안을 같이 만났다.
올해는 들었다 내렸다 고심한 작품이 많았다. 그 중 마지막까지 겨룬 것은 ‘고양이와 시소 타기’, ‘사다리와 벽’, ‘잔가지를 자른 자리에 지저귐이 자랐다’, ‘참새와 탱자나무’, ‘허블 등대’ 등이었다. ‘고양이와 시소 타기’는 감각적인 포착과 묘사가 신선했고, ‘사다리와 벽’은 사다리에 대한 독특한 접근과 해석이 시선을 끌었다. ‘잔가지를 자른 자리에 지저귐이 자랐다’는 발상의 참신한 발화가 돋보였고, ‘참새와 탱자나무’는 감각과 정감의 조화가 빛났지만, 함께 보낸 작품들의 편차나 낯익음이 보여 내렸다. 마지막 남은 ‘허블 등대’는 응모작 전반의 고른 수준과 6수(2편)에 밀도 있게 펼쳐내는 긴 호흡과 성찰이 남다른 역량으로 평가됐다.
‘허블 등대’는 발견에 입히는 사유와 이미지 조합이 정교하다. ‘빠지고 싶어 했던 깊이’는 다양한 변주로 사유를 촉발한다. ‘눈’과 ‘문’과 ‘등대’의 속성을 꿰면서 ‘들고 남’, ‘오고 감’, ‘있고 없음’의 경계를 되짚게 한다. 모래가 ‘침몰을 향해 국경선을 넘는다’는 문장도 ‘불면의 행성’이기에 가능한 월경(越境)이자 탐구이겠다. 이를 장(章)과 구(句)에 맞춤하게 앉히는 형식의 운용이 자연스럽다. 자칫 단조로울 수 있는 완결구조에 변화를 주는 도치의 활용도 능란하다.
박샘씨의 당선을 축하한다. 더 새뜻한 문학적 발명과 도약을 바란다. 다른 응모자들도 여기서 또 나아가길 기대한다.
(정수자·시조시인)
● [2022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조 당선 소감 / 박샘
‘결말’에서 ‘시작’이라는 반전을 만난 것 같다
갈 데까지 가리라는 무모한 의욕에는 지도가 없었다. 길잡이가 없었고 목적지가 없었기에 너무 멀리 와버렸다. 동행이 없었고 미행도 없으므로 걸음대로 따랐고, 몰라도 도착했으며 쉽게 길을 잃을 수 있었다. 누구도 방향을 묻지 않았고 아무도 여기를 말해주지 않는 공간, 다만 끝이 없다는 말이 너무 길다는 것을 ‘여기’는 알려준다. 급기야 걸림돌을 고대했고 바리케이드를 요구했으나 기어이 부딪혔다 논리를 구성할 필요가 없고 타자를 통해야 할 요구도 없는 벽.
보쉬의 해머 드릴은 벽과의 전쟁을 선포했지만 문을 찾아야 한다는 합당한 여망에도 안내가 없고 열쇠가 없다. 문턱도 넘지 못한 노마디즘에게는 100년간의 잠이었을까. 잠만 자는 공주의 꿈속이었을까. 생시처럼 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던 건 결말에서 시작이라는 반전을 만난 것, 문을 열어주신 조선일보와 절룩거림을 읽어주신 심사위원께 감사의 말씀 올린다. 특히 외면과 거절의 장르가 치러야 했던 현실 비관적 시선에도, 유희적 표상들을 지키게 해준 아내 정인실씨께 고마움을 전한다.
■박샘
-1959년 대구 출생
-출판사 ‘시인촌’ 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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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 농민신문 신춘문예] 시조 당선작
기울다
홍외숙
5.5도 기운 탑처럼 5도 휘어진 척추
중력도 비켜 가는 지구 위의 작은 행성
내 몸은 피사의 사탑, 기울기가 생겼다
마음의 길 따라서 기울어지는 몸길
애끓인 날수만큼 아파하고 있었겠다
몸에도 길이 있다는 걸 이제야 알겠네
숨어 휘청거리는 탑, 어쩌지도 못한 채
막막한 중심은 자꾸만 넘어진다
너에게 기우는 마음, 무중력에선 직선일까
● [2022 농민신문 신춘문예] 심사평 / 정수자, 염창권 시조시인
대상을 포착해 형상화하는 힘 돋보여
예년보다 투고 작품수가 많았다. 그만큼 기대하고 심사에 나섰다. 작품은 대략 세가지로 구분됐다.
먼저 시조의 정형 양식을 현저하게 벗어났거나, 정형 양식을 갖추긴 했어도 주제가 과잉 노출됐거나 은유의 힘이 부족한 작품으로, 이들은 일차적으로 제외됐다. 이러한 한계를 넘어선 나머지 작품 가운데 20명의 작품을 본격적으로 논의했다.
최종 논의 대상이 된 작품은 <하늘 비번> <태국색시 콩나물무침> <자벌레의 꿈> <겨우살이 전입신고> <기울다> 등 5편이다.
이 가운데 앞의 세편은 다소 도식적인 의미 전개의 양상이 지적됐다. 즉 신인다운 패기보다는 기존 투고작이 보였던 시문법의 자장 내에서 맴돌고 있다. 이전의 당선작은 그때까지 예비 작가의 글이었다. 그 이상의 것을 읽고 준비해야 한다.
최종에서 겨룬 <겨우살이 전입신고>는 활기찬 진행과 안정된 보법이 돋보였다. 그러나 대상 이해의 폭이나 깊이 면에서 평이하다고 보았다.
이와는 달리 <기울다>는 함께 투고한 <소란한 고독>과 함께 대상을 포착해 상징화하는 힘이 돋보였다. <소란한 고독>에서는 고요 속에서 내적인 갈망을 분출하는 역설의 힘을 갈무리하고 있다.
당선작으로 선정한 <기울다>는 중심이 무너진 시대의 초상 같은 것으로, 내파를 견뎌온 몸의 역사성을 알레고리적으로 환치한다. 여기서 언급하는 중력은 삶의 중심점을 지칭하는 것이자 생활의 무게를 상징할 터다.
대상의 보이지 않는 곳까지 더듬어내는 시인의 안목이 투철하다. 앞으로의 발전을 기대한다.
(정수자, 염창권 시조시인)
● [2022 농민신문 신춘문예] 당선 소감 / 홍외숙
“삶의 무늬를 담는 그릇 같은 시조 짓고파” 시조 읽으며 많은 위로 받아 부족함 성장동력 삼아 노력
겨울바람이 창문을 흔들어대는 날, 막연한 동경이 현실이 되어 제게 왔습니다.
가까이 가기엔 너무 막연한 두려움, 가둬두기엔 답답한 덩어리. 시는 제게 오래 묵은 체증 같은 것입니다. 뒤늦게 국문학을 공부하고 문학 모임에도 기웃거려 보았지만 더 견고한 벽만 체감하고는, 좋은 독자로 있자고 주저앉기를 반복하며 시간을 낭비했습니다. 오늘 <농민신문>에서 그 종지부를 찍어주셨습니다. 가야 할 길도 방향도 모르고 갈팡질팡하던 제게 환한 표지판을 세워주셨습니다.
난해한 현대시를 보다가 명쾌하고 간결한 사유가 가득 찬 시조를 읽으며 많은 위로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읽는 것과 쓰는 것은 크게 달랐습니다. 막막함과 답답함 속에 낙심하면서 ‘왜 쓸까’라는 회의와 반문을 거듭했습니다. 이제 찾지 못한 그 답을 화두처럼 뜨겁게 끌어안고 이 길을 가겠습니다. 부족함을 느낄 때마다 성장의 기회라고 생각하겠습니다. 시조가 오늘이라는 삶의 무늬를 담아내는 새로운 그릇이 되는, 그런 견고한 그릇을 만드는 질 좋은 흙이 되도록 더욱 정진하겠습니다.
서툴고 설익은 제 시에 꽃을 꽂아주신 농민신문사와 심사위원님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지금보다는 내일을 기대하며 올려주셨다고 생각합니다. 게으른 걸음을 여기까지 올 수 있도록 이끌어주신 선생님과 시조동인 ‘더율’ 문우님들, 시조의 문 앞에 손잡고 데려와준 귀한 벗에게 감사를 전합니다. 형산강 수면에 살얼음이 보입니다. 저 차가운 반짝임이 품은 따스함, 모든 분들의 겨울도 그랬으면 좋겠다고 기도해봅니다.
홍외숙 ▲1965년 경남 진주 출생 ▲부경대학교 전자공학과 졸업 ▲2021년 8월 중앙시조백일장 입상 ▲2021년 대구시조 전국공모전 입상 ▲시조동인 더율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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